책 읽어주는 남자 - 베른하르트 슐링크 (영화 '더 리더' 원작)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책 리뷰를 쓰네요^^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한 영화 '더 리더'의 소설 원작 <책 읽어주는 남자>를 밀리의 서재로 읽었습니다.
영화 따로 책 따로인 줄 알았는데 이 두 개가 같은 작품인 줄은 몰랐네요. 여러 독서 블로거들이 추천하여 한번 도전해 봤어요.
결과는 대성공~!!
책에 대한 배경지식 전혀 없이 읽어서 처음에는 흥미 위주의 소설로 착각했는데 읽고 나서 생각할 거리가 많은, 묵직한 여운이 남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저자 : 베른하르트 슐링크
번역 : 김재혁
출판 : 시공사
발행 : 2013.03.25.
소설은 시간 순서에 따라 1부, 2부, 3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소설의 무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래되지 않은 1950년대 말 독일의 어느 한 도시입니다. 병에 걸려 길에서 구토를 하던 15살 소년 '미하엘 베르크'를 36살 여인 '한나 슈미츠'가 도와줌으로써 두 사람의 인생을 크게 바꿀 운명적인 순간을 맞습니다. 그 후 한나가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던 미하엘은 다시 한나를 찾아가고 둘은 육체적인 관계를 맺기에 이릅니다. 1부만 봤을 때는 어린 소년과 성숙한 여인의 이상야릇하고 비정상적인 관계 묘사에 집중되어 흥미 위주의 애정 소설인가?..라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둘은 육체관계만 맺은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부터 한나는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데요. 소설의 제목인 '책 읽어주는 남자'는 바로 미하엘인 것이죠. 두 사람은 매일같이 만나 책을 읽고 샤워를 하고 사랑을 나누고 잠시 같이 누워 있다가 헤어지는 일정한 패턴으로 마치 의식을 치르듯 만남을 가집니다. 미하엘은 한나를 만나면서 빠르게 건강을 되찾고 학업에도 매진하며 또래들과는 다른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게 됩니다.
미하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한나의 마음이 정확히 표현되진 않지만 미하엘은 분명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이후 경험하는 모든 여자관계에서 다른 여자들과 한나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한나는 미하엘의 인생에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되지요.
전차 차장이라는 한나의 직업 외에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였던 그녀의 비밀에 대해 암시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둘이 떠난 자전거 여행지에서 미하엘은 한나보다 먼저 일어나 쪽지를 남겨두고 그녀를 위해 꽃을 사러 나갑니다. 미하엘이 다시 돌아왔을 때 쪽지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고 한나는 분노로 떨면서 여태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과격한 행동으로 미하엘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대체 쪽지는 어디로 갔으며, 한나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어는 날 한나는 홀연 자취를 감추고, 미하엘은 한나가 직장에서 승진 제의를 받았음에도 그것을 거절하고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설의 이야기 진행 자체는 굉장히 속도감이 있고 등장 인물도 단순하여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 없이 술술 읽힙니다. 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중간중간 나오는 미하엘의 심리 묘사와 시대 상황에 대한 견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들이 조금 복잡 미묘하게 느껴졌어요. 여러 번 곱씹어야 이해가 될까 말까 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나치에 관한 공부도 부족했거니와 작가의 표현력을 제가 못 따라간 거지요..
※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된 미하엘이 우연한 기회에 법정에서 한나를 만나 새롭게 드러나는 그녀의 과거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한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사지(아우슈비츠)로 보낸 혐의로 기소된 전직 강제수용소 여자 감시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가장 큰 죄목은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 여자들을 이송하면서 한 교회에 가둔 채로 불에 타 죽도록 한 혐의입니다.
미하엘은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자신이 그토록 애정하였던 여성이 나치 범죄자였다는 것, 그럼에도 그녀를 마냥 나무랄 수 없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 반가운 마음.. 따져 묻고 싶은 마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왜 이리 슬픈 것일까? 잃어버린 행복 때문일까? 왜 예전에 아름답던 것이 지나고 보니, 그것이 추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로 인해 느닷없이 깨지고 마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범죄자를 사랑한 까닭에 유죄였다
하지만 2부에서 가장 큰 핵심은 한나가 지금껏 보여 준 수수께끼 같은 행동들의 비밀이자 동시에 그녀의 약점인 것. 바로 한나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았지만 확실하게 알고 나서 다시 돌이켜보니 작가가 1부에서 자전거 여행에서 있었던 일(글을 읽지 못하는 한나가 미하엘의 쪽지를 감춘 것이겠죠) 외에도 그녀의 비밀에 대해 암시하는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더라고요. 승진 제의를 거부하고 떠난 것도 더 높은 자리로 갈수록 문맹이라는 사실을 더는 숨길 수 없다 판단한 것일 테죠.
그녀가 문맹이라는 점은 지금까지의 그녀 인생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지만 재판의 결과를 비롯해 앞으로 남은 그녀 인생마저도 송두리째 바꿔 버립니다. 한나와 함께 기소된 다른 여자 감시원들이 교회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그녀가 작성했다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 것이죠. 한나는 자신의 죄가 드러나고 자신이 저지른 죄보다 더 큰 벌을 받는 것보다, 읽고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기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문맹으로서의 수치심이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웠고 그것을 밝히느니.. 보고서의 필적 감정을 거부하고 자신이 한 일이라며 거짓 시인을 해버립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이미지가 감옥에서 보낼 세월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그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녀를 억압하고 마비시켜 제대로 몸을 펼 수 없게 만든 이 거짓된 자기 이미지를 통해 그녀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 거짓된 자기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동원한 열정 정도라면 이미 오래전에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는 자신의 이익을 좇은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진실과 자신의 정의를 위하여 싸운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안타까운 진실이요 안타까운 정의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싸움이 그녀의 싸움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숨기기 위해서 그녀는 늘 싸우고 또 싸워왔다. 실제로는 본격적인 후퇴일 뿐인 전진과 은폐된 패배일 뿐인 승리로 점철된 삶이었다.
너무 안타까웠던 것은 왜 한나는 문맹임을 들키지 않기 위한 갖은 노력과 고난을 무릅쓰고도 여태까지 글을 배우지 않은 것일까?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났어요..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마음만 먹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배울 수 있었을 텐데.. 그녀를 이해하고 싶었으나 어려운 일이었어요..
또한 미하엘은 그녀의 문맹 사실을 알면서 그것을 법정에서 밝히지 않습니다. 재판의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수없이 고민했지만 결국은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로 한 것입니다. 너무 사랑해서였을까요?.. 사랑의 깊이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차원이에요. 지독한 사랑, 열렬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이해하는 사랑, 지켜주는 사랑의 모습이랄까요..
3부에서는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른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점점 현재로 가까워지게 됩니다. 한나는 종신형 선고를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으며, 미하엘은 결혼 후 딸 하나가 있으며 이후 이혼을 하였고 법제사 전공 학자로서 나름 성공을 거두지만 그의 마음속은 한나가 떠날 줄을 모릅니다.
나는 사실 한나에게 손가락질을 해야 했다. 그러나 한나에게 한 손가락질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선택했다
미하엘은 한나를 위해 책을 읽어주는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교도소로 녹음테이프를 보내기 시작하고 그것은 10년이나 지속됩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한나를 만나러 가거나 한나에게 사적인 편지를 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책을 읽어주는 것은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그리고 그녀와 이야기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이후 한나의 가석방이 결정되고 가석방 전 둘은 딱 한 번 다시 재회를 합니다. 너무 그리웠으면서도 너무 이질적이었던 재회.. 둘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미하엘은 겉으로 반가움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일종의 연민과 사랑, 의무와 책임감, 죄책감 등으로 바깥세상에서 새 삶을 살아갈 한나를 위해 주거와 직장 등을 알아봐 주며 그녀의 보금자리를 정성껏 준비합니다.
하지만 결국 한나는.. 석방 예정일에 교도소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합니다. ㅠㅠ 그녀는 왜 이런 잔인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까요.. 미하엘에게 절대 손을 벌리지 않겠다는 마음과 자신의 죄에 대한 속죄 같은 것이었을까요?
한나가 종신형을 살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되었던 교회 화재 사건의 주범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나가 많은 유대인들을 사지로 내몬 것은 맞습니다. 그녀는 분명 유죄입니다. 하지만 한나는 판사에게 몇 번이고 이렇게 묻습니다. '판사님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겠어요?' 강제수용소 감시원이라는 일을 맡은 이상 상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나는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교도소에 있는 동안 미하엘이 보내온 녹음테이프로 그녀는 드디어 글을 배우게 되고 그러면서 나치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 생존자들의 증언 수기 등을 읽게 됩니다. 그녀는 글을 통해 몰랐던 것들을 더 알게 되고 더 생각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비로소 제대로 실감하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모은 돈을 교회 화재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에게 전해달라고 유서에 남깁니다. 하지만 그 생존자는 이런 돈으로 그녀를 사면할 마음이 없다고 하죠.
미하엘은 한나와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마음먹고 한나가 남긴 돈은 '문맹퇴치를 위한 유대인 연맹'에 기부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읽고 나서 뭔가 마음이 한참 동안 먹먹했어요.. 가슴 아프고 슬프다는 말로는 부족한 그런 묵직한 감정에 한 동안 사로잡혀 있었네요..
잘 몰랐던 독일 나치의 시대사, 전쟁 이전과 이후 세대 간의 갈등과 회복, 사랑, 죄의식, 인간 밑바닥에 자리한 자존심과 수치심의 문제 등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많습니다.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훨씬 뛰어넘어 정치적, 철학적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어 공부가 많이 되었어요.
나치 범죄자를 사랑하게 된 전후 세대의 소년을 통해 그 사랑에 대해 이해하고 책임지려고 하면서 결국 두 세대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작가가 보여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우리 제2세대들은 유대인 박멸과 관련한 끔찍한 정보들을 실제로 어떻게 대해야 했으며 또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몇몇 사람이 판결을 받고 형을 살고, 제2세대인 우리들은 경악과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입을 다무는 것,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인가?
한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겪은 나의 고통이 어느 면에서는 나의 세대의 운명이고 독일의 운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 운명에서 더욱 빠져나오기 힘들고 또한 슬쩍 넘어가기도 힘든 것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위안이 될 수 있는가?
저는 '과거를 극복하고 청산하자'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과거는 그냥 과거 그대로여야지 극복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나가 생존자에게 평생 모은 돈을 전해달라고 했지만 생존자는 그것으로 그녀를 사면할 마음이 없다고 하죠. 그녀가 내린 자살이라는 결론은 안타깝지만, 마음속으로 용서는 할 수 있어도 사면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전범국인 일본은 과거 문제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을까요?.. 일본은 과거를 청산하고 싶어 하고(위안부 합의금, 그간 간혹 있었던 정치 지도자들의 사죄 발언 등) 미래를 위해 나아가자 하지만, 과거를 없는 일로 할 수는 없습니다. 몇 번이고 사죄하라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이라도 진심을 담은 사죄가 있어야 할 것이며, 있는 그대로 과거를 인정하고 후대에 제대로 교육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서로에게 미래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일본이 짊어지고 있는 과거는 영원히 기억되어야 하며 그들의 무거운 짐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털어버리고자 하는 먼지 같은 것이 아니라요.. 쓰다 보니 일본 이야기까지 들어가 버렸네요.
오랜만에 읽은 일본 소설 이외의 소설이었는데 좁은 틀 안에 갇혀있다 조금은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나중에 '더 리더' 영화도 꼭 보고 싶어요. 영화에서는 어떤 식으로 표현되었을지, 책에서 받은 감동 그대로일지 혹은 그 이상일지 너무 궁금하네요~~
이상 '책 읽어주는 남자'의 리뷰였습니다
저는 목감기가 심하게 왔어요ㅠ
급성 편도염이 왔는데 목에서 가래피가 계속 나오고 목소리도 잘 안 나오고 며칠째 고생 중이네요ㅠ
모두 환절기 건강 유의하시고 몸에 좋은 것 많이 챙겨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