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 추천] 친밀한 이방인 - 정한아 (드라마 '안나' 원작소설)
안녕하세요. 너무 오랜만에 독서 리뷰를 남기는 것 같아요.
티스토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독서 기록을 남기기 위함이었는데 초심이 조금 흔들리고 있어요ㅠㅎㅎ
사실 올해는 괜히 읽었다 싶은 책, 중도포기한 책들이 많습니다 하하;; 작년에는 읽은 책 전부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 혹평이더라도 꾸역꾸역 리뷰를 썼었는데 올해부터는 평타 이상으로 재미있게 읽은 책들만 리뷰를 남기려고요. 그리고 독서 리뷰에 제가 생각한 이상으로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걸 깨닫고.. 취미생활로 시작한 일에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었다는... 머릿속에 든 너무 많은 생각들을 간단히 글로 정리하는 게 쉽지 않네요ㅠ
네! 아무튼 오늘 남길 독서 리뷰는 오랜만의 한국소설 <친밀한 이방인>입니다. 수지가 주연을 한 쿠팡플레이 드라마 <안나>의 원작소설입니다^^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재미있게 읽었네요.
저자 : 정한아
초판 발행 : 2017.10.13.
출판 : 문학동네
줄거리 및 읽고 느낀 점
작가님의 훌륭한 필력에 완전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후반부에 가서 다소 느슨해지는 감도 없지 않았지만 중반부까지의 몰입감과 긴장감은 최고입니다!! 분량도 짧고, 짧지만 강력하고 깊이가 있었습니다. 사기꾼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산 이야기 등 소재 자체는 색다르지 않았지만 작가님의 스토리 전개가 너무 색달라서 신선했어요.
거짓으로 점철된 한 여자의 삶.
그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우리는 과연 진실된 삶을 살고 있는가?
칠 년 동안 소설을 쓰지 못한 소설가 '나'는 '이 책을 쓴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자신의 소설이 신문 광고에 실린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광고를 올린 사람은 '진'이라는 여자로, 실종된 남편 '이유상'을 찾고 있으며 그가 광고 속의 소설을 쓴 작가로 행세했었다고 말하죠. 실종되기 전 이유상이 놓고 간 일기장을 통해 '나'는 믿을 수 없는 그의 과거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유상, 이유미, 혹은 또다른 어떤 이름의 그 여자. 음대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그 여자는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했고, 그 와중에 학생들 다수를 콩쿠르에 입상시켰다. 그녀는 또한 자격증 없는 의사였고, 또 각기 다른 세 남자의 부인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었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59쪽 -
자신의 소설을 훔친 '이유상', 아니 '이유미'가 살아온 삶에 '나'는 점점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그녀의 인생을 소재로 하여 새로운 소설을 쓰고자 결심합니다. 그녀와 스쳐갔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의 행적을 추적해 나가는데, 그 과정이 미스터리 추리물의 느낌도 나면서 굉장히 흥미진진했어요.
저는 그 사람의 반복된 거짓과 위증이 무엇에 기인하는지 그 시작과 끝을 알고 싶어요
- 76쪽 -
유미의 인생은 온통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왜 그렇게 되었으며,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유미는 미군 부대가 있는 동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지적장애를 가진 어머니 밑에서 유년 시절에는 큰 부족함 없이 사랑받으며 자랐지만, 미군을 상대했던 클럽 여자 '로라'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며 삶의 비극, 모순, 부조리함을 알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 학교선생님과 관계를 맺은 사실이 소문나 도망치듯 학교를 떠나고부터 유미의 삶은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대입에 실패하지만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대학에 합격했다는 거짓말을 해버린 것이 '거짓 인생'의 시작이었죠. 처음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한 거짓말이 점차 반복되고 커져 돌이킬 수 없게 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돈은 중요한 요소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녀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자신이 원하는 역할을 맡고 싶었다. 그 불가능해 보이는 욕심이 그녀를 자꾸만 무리한 사칭으로 몰고 갔다.
- 410쪽 -
그녀는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기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었고,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다. 죄책감이나 후회 따위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그녀가 품고 온 삶에 대한 증오, 그것이 전부였다.
- 490쪽 -
유미의 인생은 참 고달픕니다.. 진실되게 살기 위한 노력도 해봤지만 뭐 하나 나아지지 않는 삶, 배고프고 무시받는 삶.. 절망의 나락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다시 거짓으로 위장하고 발각될 때마다 다시 새로운 거짓 인물로 태어납니다. 점점 더 양심의 가책이란 것도 없어져 갔겠죠..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폐허가 된 길목에서.
- 389쪽 -
우리는 누구나 질서롭게, 평화롭게 살기 위해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하고 살아갑니다. 저마다 여러 개의 가면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거짓 없이 완전 무결한 삶이 있을까요? 직장에서의 가면, 잘 모르는 타인을 대할 때의 가면, 심지어 친한 친구나 가장 가까운 가족과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에도 두꺼운 가면이냐 얇은 가면이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요. 내면의 진실을, 자신의 민낯을 온전히 다 보여 준다면 원활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네 삶도 결코 진실하지만은 않다는 것과 유미의 짠한 인생사도 더해져, 그녀를 마냥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나무랄 수만은 없었습니다.
다만 대다수의 우리는 때때로 가면을 쓰고 선의의 '연기'를 하지만, 유미는 아예 변장을 하고 본래의 자신을 없애버리는, 부정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면서요. 분명 거짓말은 '습관'이고, 심하면 '병'이 되고, 실제라고 믿는 정신착란에 빠진다고 합니다. 유미도 과연 그랬던 걸까요?...
오랜 시간 내가 간절히 바른 것은 오직 하나, 진짜 내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변장과 거짓말을 실제라고 믿는 정신착란에 빠지는 것. 그랬다면 이토록 여러 번 죽음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허상이라도 딛고 설 땅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를 속일 때도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무대이며, 도처의 아름다운 사물들도 결국 소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 692쪽 -
유미는 '안나'를 비롯해 새로운 누군가가 될 때마다 정말로 최선을 다해 그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진실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행복해지려고 했습니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친밀했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목 또한 찰떡이에요 '친밀한 이방인'.. 그녀의 인생이 때론 너무 안타까워서 이번엔 제발 들키지 말고 잘 살아라.. 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이유미의 행방? 혹은 최후가 궁금해 손에서 놓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나갔지만 결국 이유미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또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큰 반전을 기대한 저와 같은 분들이라면 마지막 결말이 다소 아쉽고 허무할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M'으로서의 삶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녀의 거짓 인생에 연루된 사람들은 큰 상처와 피해를 받기도 했지만 그 거짓말이 누군가의 인생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소설의 화자인 '나'는 이유미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변화의 기로에 섭니다. 모든 걸 비워내고 다시 시작하기로.. 육아와 일, 가족 관계에서 고뇌하며 무너져가고, 다시 또 비워내는 '나'의 내면을 생생히 묘사하여 공감가는 바가 많았습니다.
이유미 또한 거짓을 비워내고 진짜 삶을 찾아, 어딘가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행복'이란 말은 참 가볍고도 어렵지만, 삶이 참 버겁더라도,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말고,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요.
책 속으로
온종일 작은 아파트에 갇혀 아이를 돌보면서,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내 존재가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 젊음, 내 자질, 내 영혼, 위대한 것을 이루고 성취할 수 있는 시간이 아이라는 구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미웠고, 아이가 제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성을 내며 울 때도 조금의 연민조차 느낄 수 없었다. 아이를 폭력으로 굴복시키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도록 짓뭉개버리는 환상을 보기도 했다. 결국 나는 어머니가 될 자질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 292쪽 -
내게 남은 것은 세상 아무것에나 심드렁한, 푹 퍼진 삼십대의 여자뿐이었다. 그 여자는 한때 자신에게 있었던 생기와 아름다움을 남편과 아이에게 빼앗겼다고 믿으며, 그들을 남몰래 증오했다. 그러면서도 그들로부터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그 여자의 이름이고, 집이고,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매일 그들을 죽이는 꿈을 꿨고, 한밤중에 일어나 잠든 그들의 얼굴을 손으로 쓸며 안도했다. 그 여자는 삶이 이미 자기를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 자리가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 299쪽 -
이유미는 자신이 달리는 호랑이 위에 올라탄 격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는 두려움과 동시에 흥분을 느꼈다. 자신이 감당할 수만 있다면, 다시 없을 기회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높이 올라가는 것은 좋은 것이다. 지금 서 있는 곳이 다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올라가면 더 좋다.
- 321쪽 -
사랑에 빠진 여자들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젊은 시절 한때의 달콤함에 빠져 내게 주저앉은 아내를 봐도, 쉽게 알수 있지요.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 여자를 붙잡기 위해 수없이 많은 거짓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의 연약함을 감추기 위해 더욱 크게 발을 구르고, 목소리를 높였지요. 온 세상이 나에 대해 경고했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어요. 속는 자와 속이는 자는 함께 쾌락에 빠져들기 마련입니다.
- 579쪽 -
저는 소설을 쓰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말은 너무 가볍고 환해요. 소설가로서 문장을 만들며 이십 년을 살아왔지만, 저는 한 번도 그런 종류의 기쁨을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행복은커녕 늘 불안함과 회의감에 젖어온 세월이었어요.
- 582쪽 -
아마도 그것은 생에 대한 어떤 증오가, 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검고 커다란 구멍이, 우리 두 사람 모두 닮은꼴이었기 때문일 거예요.
- 724쪽 -
드라마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소설보다 내용이 많이 축소되었고 결말도 다르다고 하는데 너무 궁금하네요. 예고편에서 잠깐 봤지만 이유미를 연기한 '수지'의 연기가 압권이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꼭 찾아봐야겠어요^^
이상 <친밀한 이방인>의 독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