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 리뷰] 거짓말을 사랑하는 여자 - 오카베 에츠
일본소설 <거짓말을 사랑하는 여자>를 읽었습니다. 지난번에 리뷰한 <친밀한 이방인>과 왠지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거짓말을 한 인물을 추적하는 미스터리류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친밀한 이방인>은 거짓말의 근원을 둘러싸고 인간 내면 깊숙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라면, <거짓말을 사랑하는 여자>는 로맨스, 휴먼드라마 느낌이 더 강합니다.
제 주관적 감상은 내용의 깊이는 전자 쪽이, 재미와 감동은 후자 쪽이에요. 둘 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자 : 오카베 에츠
번역 : 민경욱
출판 : 달다
발행 : 2019.11.25.
일본판 제목 : 嘘を愛する女
일본 초판 : 2017.12.1.
책 소개 / 영화 소개
신분을 위조한 연인의 숨겨진 과거를 추적해 가는 미스터리 로맨스 소설로,
1991년 일본 아사히신문에 게재된 '남편은 누구였나'라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죽은 남편의 사망진단서를 제출하는 순간, 그의 신분증이 모두 위조였고,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 한 여성의 이야기가 화제가 된 사건입니다.
일본에서 2018년 영화로도 개봉되었어요.
'나가사와 마사미'와 '타카하시 잇세이'가 주연을 했는데 소설을 다 읽고 매칭을 해보니 캐릭터와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울리네요. 찰떡 캐스팅입니다~!!
줄거리
2011년 3월 도쿄.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전철이 멈추고, 공황상태에 빠져 호흡을 가다듬지 못하는 '유카리'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나 그녀를 도와줍니다.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한 그 남자의 이름은 '깃페이'.
유카리는 깃페이의 자상함과 어딘지 모를 비밀스러움에 끌리게 되고 두 사람은 그렇게 연인이 됩니다.
동거한 지 5년이 지난 어느 날, 유카리는 깃페이를 어머니에게 소개해주려 저녁 약속을 잡지만.. 약속시간이 지나도 깃페이는 오지 않고 연락이 두절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다음날, 깃페이가 지주막하출혈로 길에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향하지만 경찰에게서 믿지 못할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깃페이의 신분증이 위조되었다는 것, 깃페이라는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반신반의하며 유카리는 깃페이가 근무하는 대학 병원을 찾아가지만 그런 이름을 가진 남자는 없으며 사원증도 위조되었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집니다. 그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과 의문을 느낀 유카리는 사립탐정을 찾아가 그의 정체를 알아내달라 의뢰합니다.
깃페이가 숨기고 있는 과거는 무엇이며, 그는 왜 거짓 신분으로 살게 된 것일까...
읽고 느낀 점
5년이나 동거했음에도 가짜 신분으로 자신을 속여 온 남자친구. 그는 대체 누구이며, 왜 나를 속인 건지, 이제는 추궁하고 싶어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그에게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습니다.
그 남자에게 대체 어떤 과거와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짧은 분량에 몰입감도 좋아서 금세 다 읽었어요. 가독성 최고~!!
(스포 있음)
깃페이의 정체와 그가 세상을 등진 이유가 드러났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왜 하필 이런 잔인하고 가슴 아픈 사연인 건지..ㅠ
부모가 친자식을 학대하고 죽이는 것만큼 끔찍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육아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빠져 정신이 나갔다곤 해도 그 여자를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요만큼도 들지 않습니다.(현실이 괴로워 죽을 거면 혼자 죽을 일이지!!)
어린 자식을 죽인 부인에 대한 분노, 원망, 부인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모른 채 내버려 둔 것에 대한 미안함, 아이에 대한 죄책감, 여태껏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만 같은 공허함.. 모든 것을 부정하고 포기하고 싶었을 깃페이의 마음은 십분 이해가 갑니다. 그렇게 그는 자취를 감추고 도쿄로 흘러들어가 빈껍데기처럼 살게 된 것이죠.
(여기서 반전 아닌 반전은, 깃페이는 의사가 맞았습니다!! ㅎㅎ)
깃페이는 회색 인간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눈에 뜨거운 빛이 감도는 걸 본 적이 없다. 대신 거기에 있던 건 회색 인간들이 가진 것과 같은 공허였다.
- 180쪽 -
유카리를 만나기 전 그저 공허하게 시간을 보내며 죽을 생각만 하던 깃페이에게 유카리는 새로운 안식처였습니다. 유카리를 만나고 더디지만 삶의 의욕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상처 회복에 걸리는 시간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깃페이가 좀 더 일찍 그녀에게 진실을 밝혔더라면 좋았을텐데요.. 그의 비극적인 과거가 신분까지 위조해가며 연인을 속여도 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실제 나에게 닥친 일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함께 한 5년이란 시간이 모두 거짓이었는데, 그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전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을지.. 용서할 수 있을지.. 저는 좀 어려울 듯ㅠ 아무리 아픈 과거가 있더라도 사랑하기 때문에야말로 진실되게 털어놓고 위로를 받든 매를 맞든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진실하며,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며, 그 사랑은 거짓까지 보듬어 줄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밝혀진 진실은 슬펐지만, 그래도 미래는 유카리의 시점에서 희망적으로? 그려진 듯 했습니다. 마지막 반전에 살짝 코끝이 찡해졌고 한 동안 여운도 남았습니다. 물론 유카리의 선택에 퍽 공감은 가지 않지만요;;
깃페이가 썼던 소설에서처럼, 유카리와 다시 가족을 이루고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나는 큰 죄를 짊어졌으면서 그런 행복을 꿈꾼 엄청난 바보였어. 하지만 꿈꾸지 않을 수 없었어. 그건 당신과 만났기 때문이야. 당신은 내 안심, 희망 그리고 안식처니까.
- 563쪽 -
책 속으로
알고 싶어 견딜 수 없으면서도 깃페이의 진실에 다가가는 게 갑자기 두려워졌다
- 150쪽 -
숨긴다는 건 켕기는 게 있다는 말이고,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 174쪽 -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작은 거짓말을 하는 법이죠. 상대가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 208쪽 -
복수였어요. 날 속인 그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비밀을 파헤쳤고, 결과적으로 가장 소중한 걸 산산조각 냈습니다. 그 사람과 나 둘 중에 정말 나쁜 사람은 누굴까요.
- 360쪽 -
나는 줄곧 외톨이였던 것이다. 둘이 무언가를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혼자 요란을 피우며 잘난 체했던 한심한 외톨이였던 것이다.
- 36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