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노 가즈아키의 2001년 데뷔작 '13계단'을 읽었다.(이게 데뷔작이라니!!)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심사위원 만장일치 수상작이자, 역대 수상작 중 최단기간 100만부 판매 기록을 세운 일본 추리소설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우리나라 출판사 황금가지에서 선보이는 시리즈 '밀리언셀러 클럽' 인기작이기도 하다.
(밀리언셀러 클럽 29)
저자: 다카노 가즈아키(高野和明)
번역: 전새롬
일본초판: 2001년 8월
한국발행: 2005.12.24.
출판: 황금가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 재밌다!!
순식간에 다 읽음!!
작가 너무 대단함!!
또 읽고 싶다!!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또 읽고 싶다는 것은 추리소설로서 최고라는 뜻!!
일본에서 2003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데 영화도 너무 궁금하네~~
줄거리
사형 집행까지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자신의 범행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형수 사카키바라 료. 그의 무죄를 밝히는 사람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익명의 의뢰인이 나타난다.
교도관 생활에 염증을 느낀 '난고'와 상해 치사 전과자인 '준이치'는 사형수 료의 유일한 기억인 '계단'을 단서로 진범을 추적해 나간다. 과연 두 사람은 진범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료는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것일까?...
나의 리뷰
리뷰가 다소 길어질 것 같다. 마음에 드는 작품일수록 할 말이 많으니^^
우선 '13계단'이란 제목은 일본에서 사형 판결 선고 이후 집행까지의 절차가 13가지라는 점을, 사형 확정수 료의 유일한 기억인 계단에 빗대어 만들어 낸 제목이다.
13계단은 단순히 재밌기만 한 추리소설이 아니다. 훌륭한 사회파 소설이기도 하다. 원죄의 가능성이 있는 사형수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진범을 추적해 나가는 추리적 서사 속에, 일본 사형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사카키바라 료는 범죄사실을 기억해내지 못함에도 기억에도 없는 죄로 사형 판결을 받는다. 아니 오히려 기억을 못 하기 때문에 사형 판결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무기징역이냐 사형이냐의 기로에서 사형 판결을 피할 수 있는 요인으로 '개전의 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범죄자가 얼마나 뉘우치고 있냐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죄를 범한 인간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를 겉으로 봐서 알 수 있는 것인가?.. 법정에서 얼마만큼 눈물을 흘리고 얼마만큼 반성문을 쓰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면 눈물 많고 연기를 잘할수록 더 유리한 것이 아닌가? 사카키바라 료의 경우 기억상실증에 걸려 본인이 저지른 죄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까닭에 뉘우침이란 것도 있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개전의 정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사카키바라 료는 사형 판결을 받는다.
이 외에도 사형 집행을 결정하는 과정이 여론이나 정치적 고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사형 집행 후 진범이 잡혔을 경우 법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진범을 공범자로 몰아가기도 하는데,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일본의 실태라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범죄 소설을 좋아하고 사형제도에도 관심이 많다. 단언컨대 사형제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 한 권으로 사형제도를 생생히 경험할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글로 읽고 있는데도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한 극도의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는데 이러한 묘사와 표현력에서 작가의 능력이 증명되는 것 같다.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사형집행 장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유아 2명을 강간 살인하고도 끝까지 죄를 뉘우치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발버둥을 치는 사형수도 있는 반면, 종교에 귀의해 피해자를 위해 매일 기도를 하며 개전의 정이 여실했던 한 사형수는 마지막 가는 길 고백 성사를 하며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와 함께 지내 온 담당 간수는 울음을 터뜨리고 집행 교도관은 끝내 사형 집행 단추를 누르지 못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사형 집행 교도관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닌지.. 그들은 심하게는 자신이 살인을 범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한다. 소설 속 난고처럼 말이다.
하지만 또 이렇게 생각해 보자. 연쇄살인범 유영철이나 아동성폭행범 조두순 같은 흉악범들이 아무리 뉘우친다 한들 동정할 가치가 있나? 사회에 돌려보낼 수 있나? 물론 조두순은 이미 사회에 복귀해 어디선가 살고 있지만 말이다...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을 들어보자면 생명의 존엄성에 근거한 범죄자의 인권 보호와 사형이 흉악범죄 억제 효과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점, 만에 하나라도 있을 오판의 가능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한 흉악범에게도 인권을 부여해야 하는가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범죄자의 생명보다는 피해자의 상처 회복을 우선시하여 행한 행위 그대로 돌려주는 적절한 응보야말로 국민들의 법감정에 부합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97년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로 사형 집행이 행해지지 않고 있는데 일본은 어떨까?
1. 일본은 매년 꾸준히 1~4명 정도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2. 일본 메이지 유신이 시작된 1870년대부터 교수형을 통한 사형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3. 사형집행일을 미리 고지하지 않고(집행일 전에 자살하는 경우가 많아) 당일에 고지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아무튼 사형제도의 구조적 모순, 범죄자의 인권, 피해자 유족의 응보 심리, 사형 집행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인권 침해 등 쉽게 답도 내릴 수 없는 문제들 속에서 엄청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추리 이야기를 해보자.
(스포 포함)
추리소설의 재미인 진범 찾기!!
혹시 준이치가 진범인 것은 아닐까.. 내내 읽으면서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마 나 말고도 그렇게 생각한 독자들이 꽤 있지 싶은데..
10년 전 노부부가 살해되었을 때, 준이치 또한 같은 지역에서 가출 사건으로 붙잡힌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우연인지, 준이치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작가의 설명은 충분치 않다. 그래서 내내 마음에 걸렸고 준이치에 대한 의심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준이치가 진범이라면 왜 진범을 찾아내는 의뢰에 뛰어들었는가에 대한 의문 또한 남는다.
드디어 고된 수색 끝에 료의 기억 속 계단이 있는 장소를 찾아내게 되고 준이치는 불상 속에서 진범이 숨긴 증거품들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증거품들에서 검출된 지문은!! 다름 아닌, 역시나! 준이치의 것이었다!!! 어렴풋이 의심을 품고 있었음에도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 맛에 추리소설을 읽는 거ㅎㅎ
하지만 준이치에 대한 의심을 품게 만든 것 또한 작가의 함정이었다는 거.. 나에겐 준이치가 진범이 아닌 것이 반전이었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진범이 등장한다. 소름 그 자체!!!
사건의 내막이 마지막에 가서 명확히 드러났을 때 준이치의 범죄는 내 안에서는 정당한 것이 되어버렸다. 준이치가 왜 죄를 뉘우칠 수 없다고 했는지 완전히 공감해 버렸다..
나나 너나 종신형이다
가석방은 없다
- 난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석방은 없다'라는 마지막 난고의 말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평생 죄를 짊어지고 살아갈 각오인 난고와 준이치 두 사람을 보며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심사평에서 미야베 미유키가 말한 것처럼 주도면밀하고 탄탄한 구성에 감탄하게 된다는 것이 정말이지 꼭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13계단' 괜찮은 사회파 추리소설이니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하이라이트 문구
이 나라에서는 흉악 범죄의 피해자가 된 순간, 사회 전체가 가해자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피해자를 괴롭힌들 사죄하는 사람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어요.
범죄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침투하여 그 토대를 들어내는 것이다.
그때 나는 달리 어찌했으면 좋았단 말인가. 사무라 교스케의 목숨을 빼앗을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 준이치 -
모두 인간이 한 짓이다. 유아 둘에게 저지른 잔학한 범행도, 이를 범한 자에 대한 처형도. 죄와 벌은 모든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이 한 짓에 대해서는 인간 스스로가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법률은 옳습니까? 진정 평등합니까? 지위가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나쁜 인간은 범한 죄에 걸맞게 올바르게 심판받고 있는 것입니까? 제가 사무라 교스케를 죽인 행위는 죄일까요? 그런 것도 깨닫지 못하는 저는 구제 불능의 극악인일까요?
- 준이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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