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노 가즈아키의 '그레이브 디거'를 소개해볼까 한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데뷔작인 '13계단'으로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했다. 그 바로 다음 작품이 바로 '그레이브 디거'인데 '13계단'이 워낙 높은 평가를 받았고 나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무척 기대가 되었는데, 읽어 보니 역시나!!!
재미있다!!!
대단한 작가임을 또 한 번 증명해냈다!!
저자: 다카노 가즈아키(高野和明)
번역: 전새롬
출판: 황금가지
발행: 2007.6.29.
원제: グレイヴディッガー
일본 초판: 2005.6.15.
우리나라 출판사 황금가지에서 선보이는 시리즈 '밀리언셀러 클럽' 인기작이기도 하다. (밀리언셀러 클럽 66)
줄거리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험악한 인상 때문에 평생 범죄의 그늘에서 살아온 야가미는 새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골수이식이라는 선행을 결심한다. 그러나 이식 수술 하루 전날 야가미는 의문의 살인 사건 현장의 최초 목격자가 되고, 중요 참고인으로 수색 명령이 떨어지게 된다. 경찰에 붙잡히면 이식 수술은 받을 수 없게 된다. 진범인 연쇄 살인마와 정체불명의 컬트 집단까지 합세하여 야가미를 추적해 오고, 백혈병 환자를 구하기 위해 야가미는 목숨을 건 도주를 시작한다.
나의 리뷰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는데 책에 완전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100% 만족스러운 서사는 아니었으나 스토리의 전후 인과 관계가 치밀하게 잘 짜여 있어 하나씩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재미가 있고, 13계단에서 사형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듯, 그레이브 디거에서도 부패한 국가 조직의 권력 남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작은 악당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하루 동안의 도주극
주인공 야가미는 건달이지만 뼛속까지 악인은 아니다. 사람들을 등쳐먹기도 했지만 자신의 지난 과오를 뉘우칠 줄 알며 무엇보다 새사람이 되고자 하는 목적의식이 확실하다. 유머 감각도 있어 왠지 모르게 정감 가고 위로해 주고픈 인물이다.
자신의 골수를 기다리고 있는 어린 소녀에게 골수이식을 해 주기 위해 야가미는 붙잡히지 않으려고 목숨을 건 도주를 시작한다.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도주를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현실성은 좀 떨어지지만 스토리를 더 극적으로 만들었고 야가미의 인간적인 면모를 돋보이게 한 것 같다.
자신을 쫓는 의문의 살인자들과 경찰들로부터 야가미는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탈출해 나가며 도주의 경지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도주의 천재이자, 도주의 끝판왕이다. 온갖 교통수단을 다 동원하여 도쿄 전역을 가로지르는 하루 동안의 도주는 긴박했고 처절했으며, 묘사가 너무도 세세하고 리얼했다. 모노레일 도주 장면은 장소와 상황 묘사가 너무 세세해서 정유경의 '7년의 밤'의 댐 묘사(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아 지도가 첨부되어 있을 정도다..), 미야베 미유키의 '외딴집'에서의 마을 묘사가 생각날 정도였다.... 어쭙잖은 조사와 상상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13계단에서도 다분히 느꼈는데 다카노 가즈아키는 '사전 조사가 꼼꼼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또한 작가는 소설가 데뷔 전에 영화 연출을 했다고 하는데 마치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하는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과연 영화에서 배운 솜씨가 아닐까 싶다.
사실 도주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살짝 피로감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언제 끝나는 거지??... 그럴 때마다 도주극 사이사이 벌어지는 자극적인 사건들로 인해 극의 몰입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소설의 처음은 마약 중독자의 살인 사건으로 시작되는데, 살해된 마약 중독자는 시체가 전혀 부패되지 않은 제3종 영구시체로 발견되고 뒤이어 시체가 도난당한다. 얼마 뒤 야가미가 첫 목격자가 된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그레이브 디거'에 의한 연쇄 살인이 일어난다. 그레이브 디거란 '무덤을 파는 자'라는 뜻으로 과거 유럽의 마녀사냥에서 고문당해 죽임을 당한 자가 무덤에서 되살아나 복수하기 위해 부활한 사자라는 뜻이다. 살인 피해자들에게는 맨 처음 마약 중독자 살인 사건의 목격 증인이라는 점과 장기기증을 희망등록한 도너라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M이라는 비합법적 컬트 집단, 일본 경찰과 정치계의 부정부패까지 다양한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극 초반에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던 퍼즐 조각들이 서서히 맞춰지며 연쇄 살인마와 컬트 집단의 정체를 추리해 나가는 재미가 있다. 의외로 그레이브 디거를 추리하기는 간단했다. 내가 맨 처음 생각한 인물이 반전 없이 그대로~~ 작가가 아무렇지 않게 던졌지만 꽤 부자연스러운? 위화감이 드는 장면이 있다. 잘 알아맞혀 보시길~^^
하지만 살인마가 된 경위는 다소 무리하게 끌고 온 느낌?... 자신의 인생을 조져가며 왜 그렇게까지??ㅠㅠ 범인은 거대 권력 앞에서 법에 의한 심판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단죄하는 길을 택한 것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레이브 디거의 정체는 예상한 대로였지만 야가미가 쫓기는 진짜 이유와 배후에서 이 끔찍한 일들을 조종한 자들의 추악함이 드러났을 때는 예상치 못한 결말에 무릎을 쳤다.
에도가와 란포상 심사위원인 니시가미 신타의 말을 빌리자면,
"근래에 없는 뛰어난 논스톱 서스펜스이며, '환불 보장'을 내세워도 좋을 걸작이다.!!"
말 그래도 극강의 논스톱 서스펜스를 즐기고 싶다면 <그레이브 디거>를 강추한다!!!!
하이라이트 문구
언제부터 가해자가 되었을까? 그 자신도 오래전에는 자기 책임이 아닌 불행으로 고통받던 피해자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자기 의지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가해자로 변했다.
- 60쪽 -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의견이 다른 자에게 적개심을 느끼고 공격하고 배척하려 든다. 마녀사냥이 자라날 토양은 이 인간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 96쪽 -
자신이 도우려는 상대는 약한 어린아이가 아니던가? 본인의 책임이 아닌 불행에 시달려 상처받고 무릎을 끌어안고 울 수밖에 없는 가여운 어린아이. 그것은 바로 자신의 과거의 모습이었다. 야가미는 깨달았다. 백혈병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인생 최대의 도박이었다. 내건 것은 돈이 아니라,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던 자신의 자존심이었던 것이다. 친부모의 폭행에 의해 너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말만 듣고 자란 자신이,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
- 272쪽 -
사형제도 폐지, 일장기 반대, 원자력 반대, 무엇이든 간에 현실을 바꾸려는 자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된다. 민주주의국가의 그늘에서 꾸물대는 마녀재판의 논리. 현대사회의 이단 심문 제도였다.
- 279쪽 -
권력이 부패하는 구조란 바로 이런 것이다. 현 체제 속에서 권력자가 범죄행위에 가담한 경우, 이를 추궁하는 행위마저 반체제의 딱지가 붙어 보안 조사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권력 기구는 비리를 추궁하는 손에서 벗어나 부패의 길을 곧장 달려간다. 구정물을 좋아하는 시궁쥐의 세계가 자연 정화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치계의 부정부패로 찌든 수치스러운 이 나라의 현대사는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그리고 50년 후의 역사 교과서에는 이런 대목은 송두리째 삭제될까?
- 287쪽 -
이게 이 나라의 정의야 법률은 평등하지 않아. 검찰은 내 식구나 챙기고 정치권력과 유착해서 거물급 정치가의 범죄는 눈감아 주는 거야. 억울한 건 약한 놈들뿐이지.
- 293쪽 -
체제에 의한 범죄. 정치하는 사람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말살되어 가는 이름 모를 시민들. 범인이 그 전설을 모방하는 까닭은 이것이 복수극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 295쪽 -
그레이브 디거의 범행을 막는 게 정의일까요? 아니면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 살인 집단을 없애는 게 정의일까요?
- 296쪽 -
하느님, 꼭 그 아이를 살려 주세요. 이식을 성공시켜 주세요.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리고 순수한 생명을 빼앗아 가지 마세요. 무엇 하나 보답받지 못한 인생에서 처음으로 야가미의 마음이 희망으로 가득 찼다. 자신만의 신, 자신의 선한 마음이 만들어 낸 신에게 악당은 열심히 기도를 올렸다.
- 41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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