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키요라입니다🤗
오늘은 일본 소설 중에서도 일본 에도 시대물인 '미야베 미유키'의 <흑백>을 리뷰해 보겠습니다.^^
시대만 에도시대일 뿐이지 어려운 역사물이 아닌 괴담집이에요 ㅎㅎ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답니다!!
미야베 미유키(일명 미미여사^^)는 <화차>, <모방범>, <솔로몬의 위증> 등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유명하지만, 사회파 미스터리 못지않게 시대물도 그녀의 작품 중 절반을 차지하는데요.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시대 미스터리 시리즈 '미야베 월드 제2막'의 하나인 '미시야마 변조 괴담 시리즈'의 제1편이 바로 <흑백>입니다.
참고로 미시야마 변조 괴담 시리즈를 출간 순서대로 살펴볼게요.
순서 | 작품명 | 출간연도 |
1 | 흑백 | 2008 |
2 | 안주 | 2010 |
3 | 피리술사 | 2013 |
4 | 삼귀 | 2016 |
5 | 금빛 눈의 고양이 | 2018 |
6 | 눈물점 | 2019 |
7 | 영혼 통행증 | 2021 |
8 | 따라서 전술한 바와 같다 (よって件のごとし) |
출간 예정 |
<흑백>의 원제는 '두렵다, 무섭다'라는 뜻의 <오소로시(おそろし)>입니다. 직역하기엔 좀 애매한 부분이 있어 <흑백>으로 번역이 된 것 같은데, 아주 잘 지은 제목 같아요^^ 왜 제목이 <흑백>인지는 줄거리에서 설명할게요~~
그리고 역시나 일본 NHK에서 2014년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습니다.^^
1. 줄거리/개요 (출판사 서평 참고)
에도의 간다 미시마초에 자리 잡은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 이곳에는 가슴속에 크나큰 상처를 간직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소녀 '오치카'가 있다. 미시마야의 주인 '이헤에'의 조카딸로, 미시마야에 틀어박혀 하녀 일을 거들며 지내고 있다.
어느 날, 주인 이헤에가 급한 용무로 자리를 비운 사이 이헤에와 바둑을 두고 싶다며 손님이 찾아온다. 오치카는 어쩔 수 없이 숙부를 대신하여 숙부가 바둑을 두는 '흑백의 방'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찾아온 손님 '도키치'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픈 과거를 간직한 사내였다. 도키치는 그 자리에서 오치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키치의 이야기를 듣고 오치카는 '세상에는 온갖 불행이 있고, 죄와 벌이 있고, 어둠을 껴안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조카의 심리적 변화를 눈치챈 이헤에는 오치카를 위해 흑백의 방에 이야깃거리를 가진 손님을 초대해 괴담 대회를 열게 된다. 괴담을 듣는 사람은 오치카 한 사람이다.
초대된 손님들은 저마다 기괴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놓는다. 과연 이 이야기들은 오치카에게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까? 그리고 오치카가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괴로운 과거란 무엇일까?..
1장. 만주사화 - 사람을 죽인 형에 대한 동생의 그리움과 미움이 뒤섞인 이야기
2장. 흉가 - 백 냥을 받는 대가로 아름다운 저택에서 살아야 하는 자물쇠 장수 가족의 이야기
3장. 사련 - 오치카를 둘러싼 두 남자의 다툼 끝에 벌어지는 비극
4장. 마경 - 요양을 위해 오렌 세월 떨어져 자란 남매의 불가사의한 관계
5장. 이에나리 - 사람을 홀려 삼키고 떠도는 영혼을 불러들이는 저택에 숨겨진 비밀
2. 리뷰
현대 소설만 읽다가 일본 시대물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흥미로울 수 있다니!! 너무너무 재미있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에도 시대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현장감이 탁월했고, 시대 배경과 관련된 옛 단어들이 많이 나왔지만 번역이 친절하게 되어 있어 몰입을 방해하거나 읽기에 어려움은 없었어요. 여자 이름들이 다 '오'로 시작해서 좀 헷갈리긴 했지만요. 오치카, 오타미, 오시마, 오사이, 오후쿠, 오키치...ㅋㅋ
괴담이라곤 하지만 전혀 무섭지 않고 살짝살짝 오싹한 느낌에, 서글프고 애절한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다섯 개의 사연이 연작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던 것이 마지막에 가서 하나로 연결됩니다.
각각의 사연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지고 가슴에 돌덩이가 하나 앉은 것 같은 느낌이 들다가 마지막에 전체를 다 읽고 나서는 무거운 가슴속이 가벼워지는 듯한 해방감과 함께 묵직한 감동마저 느낄 수 있었어요!! 사연을 이야기하는 화자와 청자인 오치카의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사람이란 무엇이고 우리들 마음은 어떠한지 생각하게 만드는,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오치카 : 마쓰다야 주인은 용서를 받으셨다는 뜻일까요?
이헤에 : 그렇지 않아. 용서하신거지. 마음속에 단단히 봉해두었던 죄를 토해냄으로써, 겨우 스스로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게야. 그러니 네 공이다.
오치카 : 저는 그저 이야기를 들어 드렸을 뿐이에요.
- 1장. 만주사화 中 -
네게도 누군가에게 마음속을 완전히 털어놓고 후련하게 해방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분명히 그런 날이 올 테니만,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어. 네가 누군가를 고르고, 그 누군가가 네 마음 깊은 곳에 뭉쳐 있는 슬픔을 풀어줄 게다.
- 1장. 만주사화 中, 이헤에 -
이 책을 읽고 느낀 가장 의미 있는 한 가지는 '말이 가지는 힘'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짜증 나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속에 담아두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곧잘 '말'로 풀어내는 편인데요. 그러면 뭔가 속에 쌓여있던 응어리가 해소되는 것 같아요. 물론 이 책 속의 사연과 같이 그토록 괴롭고 끔찍한 이야기라면 오히려 더 숨기고, 잊어버리고 싶을 수도 있을 테지만요..
아무튼 '말'로 해소하기를 좋아하는 저는 흑백의 방을 찾아온 손님들이 오치카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이해와 용서를 받고 자신을 짓누르던 고통, 후회, 죄책감 등을 털어낸다는 것에 크게 공감이 갔습니다. 오치카는 '그저 이야기를 들어드렸을 뿐'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치유가 되었을까요.
나는 다른 사람의 불행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내가 뭘 무서워하는지 알아가고 있는 거야. 정체도 모르면서 무조건 두렵다고 도망쳐 다니기보다는 그 편이 낫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지.
- 5장. 이에나리 中, 오치카 -
아가씨가 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슴속의 아픔을, 살아 있었을 때 저지른 어리석은 잘못에 대한 후회를. 듣고 알아주셨지요. 아가씨의 마음속에서 눈물을 흘려주셨지요. 그런 참혹한 일은 남의 일이다, 불길하다, 어리석고 시시하다며 외면하지 않고, 자기 일처럼 슬퍼해 주셨습니다.
- 5장. 이에나리 中, 도베에(도키치) -
또한, 오치카의 경청하는 자세에서 저 자신을 돌아보고 뜨끔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가장 큰 경청자는 다름 아닌 남편인데, 누구보다 저의 짜증과 불만, 하소연을 인내 있게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제가 '말'로 해소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경청자가 곁에 있기 때문이겠지요?
반대로 과연 나는 얼마나 잘 경청하고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남의 말은 잘 듣고 있지 않는 게 아닐까..라고 돌이켜 생각해 봤어요. 오치카는 그저 듣기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일처럼 슬퍼하고 공감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두고 있었던 자신의 상처와도 마주하게 됩니다. 말하는 사람만이 아닌 듣는 사람도 함께 치유되는 것이지요.
"잊힌 게 슬펐군요. 잊혀가는 게 슬펐군요. 이제 그런 슬픔에 잠겨 있는 건 그만해요. 새로운 일을 하는 거예요."
무엇이 잊히든, 얼마나 잊히든, 결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이 저택 주인의 '바람'을 이루어 주는 일.
"당신도 여기에서 나가고 싶지요" 그게 오치카가 이 저택에서 들어야 할 이야기다.
"자, 저와 함께 나가요. 바깥은 밝아요. 모두들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 5장. 이에나리 中, 오치카 -
마지막 5장에서 오치카가 안도자카 저택 속 광에 들어가 텅 빈 궤와 마주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모든 사연을 아우르는 상징적인 장면인 것 같으나, 저는 이해가 확실히 되지 않았어요.(누가 좀 이 장면의 의미를 해석해 주신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의 사람과 이야기는 잊혀 가지만 분노, 슬픔, 원한 등의 괴로운 감정은 남아 있습니다. 잊혀지기 때문에 저택은 주인 없이 비어있는 것이고, 잊혀지기가 싫어 저택은 계속해서 주인을 찾는다고 했어요. 여기서 '저택'이 의미하는 바는, 도베에가 말한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그저 '그저 미련 덩어리인 감정'이며, 저택의 주인은 '이야기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할까요?
오치카는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광에 갇혀있던 괴로운 감정들을 밖으로 꺼내는 역할을 자처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밖으로 나가 새로운 일을 찾자'는 말은 곧,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자는 말로 들렸어요. 그건 물론 타인의 상처만이 아닌 자신의 상처까지도 포함해서 말이죠.
오치카씨, 버리는 신(神)이 있으면 줍는 신도 있는 거예요. 나쁜 일이 한 가지 있어도, 설령 그게 아무리 나쁜 일이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망가지는 것은 아니에요.
- 5장, 이에나리 中, 오후쿠 -
세상에는 무서운 일도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답이 나오지 않는 일도 있으며 출구가 발견되지 않는 일도 있다. 오치카 너만 그런 것이 아니란다. 하고 숙부님이 제게 가르쳐 주시려는 게 아닌가 싶어요.
- 3장. 사련 中, 오치카 -
내면의 아픔을 가지고 얼떨결에 흑백의 방에 내던져졌던 오치카지만, 다른 사람의 어둠과 슬픔, 고통과 마주하는 사이 오치카 역시도 스스로를 용서해 나갑니다. 그래, 세상에는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을 수 있고, 그것으로 모든 게 망가지는 것은 아니야..
그녀는 더욱 성장하여 이제는 자신의 의지로 괴담 대회를 펼쳐나가는 모습이 마지막에 그려집니다. 이어지는 미시야마 변조 괴담 시리즈에서도 작가가 그려나갈 괴담들이 얼마나 무궁무진할지 매우 기대되네요👍😄
흑백의 방에서 펼쳐지는 상처와 치유의 이야기!
미야베 미유키가 새롭게 선보이는 에도 시대 연작 소설
- 출판사 서평 -
3. 그 외 인상적인 문장들
오늘부터 이곳은 너의 '흑백의 방'이 될 것이다. 나와 바둑을 두는 적수들의 경우에는 이곳에서 그야말로 승부의 흑백을 다투었지만 네 경우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의 흑과 백을 견주어 본다는 뜻이 되려나. 반드시 백은 백, 흑은 흑이 아니라 관점도 바꾸면 색깔도 바뀌어 그 틈새기의 색깔도 존재한다는..
- 2. 흉가 中, 이헤에 -
보지 못한 척하는 게 친절이다. 동정 따위를 해서는 안 된다. 아무 일도 없는 듯한 얼굴을 하고 기분 좋게 인사하는 거야. 그리고 깊이 관여하지 않으면 된다.
- 3장. 사련 中 -
우리 가족은 아주 깊은 뿌리 부분에서부터 마쓰타로 씨를 마치 마루센에 오는 식사 시중드는 여자들과 똑같이 대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친절하게 대한다. 곤란에 처해 있으면 도와준다. 함께 웃을 때도 있고, 무슨 일이 생기면 걱정한다. 그렇게 해두면 서로 이득이 있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은 긋고 있다.
아버지는 여관 장사에는 사람의 정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허나 정말로 정을 가졌다면, 부모와 형제를 위해 몸을 파는 여자를 내버려 둘 수는 없을 거예요.
- 3장. 사련 中, 오치카 -
농담으로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다. 진심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다. 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어른이 될 수 없다.
- 3장. 사련 中 -
오후쿠 : 귀신은 있어요. 있지만, 그 존재에 생명을 주는 것은 우리들의 여기랍니다.
여기라는 대목에서, 가슴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오후쿠 : 마찬가지로 극락도 존재하지요. 여기에 있답니다. 제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언니는 극락으로 건너갔어요.
마구 짓밟힌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이 가슴을 꽉 막고 있는 후회와 가책을, 그런 것 따위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타인이 손쉽게 옆으로 치워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분했다. 귀신은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의 가슴속에. 극락도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의 가슴속에. 모든 일이 그리 쉽다면 대체 괴로워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 5장, 이에나리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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