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류 - 히가시야마 아키라(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 일본 소설 추천)

키요라 2022. 11. 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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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화제작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류>를 읽어봤습니다!! 밀리의 서재에 담아놓기만 하고 계속 바쁘다는 핑계로 시작을 못하고 있었는데요. 1장 읽기까지 며칠이 걸렸습니다.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바빠서 여유 있게 읽을 시간이 없었네요. 주말에 날을 잡고 읽었는데 순식간에 빠져들어 다 읽었습니다. 너무 재미있더군요!! 할 말이 많은데 또 구구절절 얘기가 길어질까 봐 걱정입니다. 하하;;

출처: 교보문고

 

저자 : 히가시야마 아키라
번역 : 민경욱
출판 : 해피북스투유
출간 : 2022.6.22.
일본 초판 : 2015.5.13.




1. 작품 이력 및 작가 소개

이 작품의 이력은 화려합니다.
제153회 나오키상 대상 수상, 2016년 일본서점대상 8위, 2016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5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내가 심사를 맡은 이래 단연 최고의 작품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든 것이 빼어난 걸작이다" 등의 극찬이 이 책을 안 읽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어요^^

'히가시야마 아키라'는 대만 태생으로 9살 때 일본으로 왔으며, 어릴 때 대만에서 살았던 경험이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친 듯합니다. 대만인 작가가 아닌 일본인 작가가 대만을 배경으로 한 시대물을 써서 일본에서 출판했다는 것이 상당히 독특하다 생각했어요. 게다가 나오키상 수상이라니!!
읽기 전부터 기대감이 너무 컸던지라 혹여라도 기대만큼 재미가 없으면 어쩌나 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불안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2. 간단 줄거리 및 개요

<류>는 1970~80년대의 대만을 배경으로, 할아버지 예준린의 죽음을 목격한 주인공 예치우성이 할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과 그의 성장을 그린 미스터리 기반의 성장 소설, 역사 및 시대물입니다.

프롤로그는 한 청년(예치우성)이 중국 칭다오의 한 마을에서 자신의 할아버지(예준린)의 비석을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일명 '사허마을 학살사건'.
무고한 백성 56명을 잔인하게 죽인 할아버지. 손자는 할아버지가 학살을 일삼은 마을을 왜 방문하게 된 것일까요?

과거를 거슬러 때는 대만의 총통 장제스가 서거한 1975년, 같은 해에 예치우성의 할아버지 예준린이 살해당합니다. 치우성이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큰 뼈대이지만 단순한 범인 찾기 미스터리물은 아닙니다.

소설은 14장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이 하나의 이야기로서도 완결되어 있어 독립된 이야기로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어요.
치우성이 중학생이었을 때부터 26살이 되기까지의 성장 과정 속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범인의 정체와 할아버지의 과거와 관련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은 곧 스스로와 가족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3. 읽고 느낀 것들

 

탁월한 이야기꾼, 글쓰기의 천재!!

'히가시야마 아키라'는 <류>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읽으면서 내내 느낀 것은 이 사람은 글쓰기에 있어서 단연코 천재다!! 재능이 차고 넘친다!! 였어요. 문장력이 탁월하다 못해 기가 막힐 정도였고, 표현도 어쩜 이리 풍부하고 생동감이 넘치는지!! 살아 숨 쉬는 문장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어요.

<류>는 서사가 길고 방대한 스케일의 대하소설입니다. 다양한 에피소드와 캐릭터가 등장하고 묘사가 굉장히 디테일한데요. 묘사가 너무 디테일하면 자칫 몰입을 방해하고 지루해질 수도 있는데 <류>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머와 해학까지 섞어 중간중간 웃을 수 있는 포인트들도 많아 지루할 틈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어요.
책을 읽고 있노라면 점점 빨려 들어가 이야기 속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지게 되더라구요. 어휘나 표현들이 어렵지 않으면서도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다고 할까요? 작가님의 재능이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ㅠㅠ
작가의 유머와 표현력이 돋보이는 문장을 몇 개 모아봤으니 궁금하시면 접은 글을 펼쳐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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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불량과 시적인 불량에 차이가 있다면, 단순한 불량은 눈앞에 있는 적만 보지만, 시적인 불량은 자기 내면에도 적이 있다는 점이다.
- 제2장. 고등학교를 자퇴하다 -

일본 제품은 잘 모르나 바퀴벌레라고 하면 대만이 본고장이다. 우리 집 바퀴벌레는 한 마리도 빠짐없이 대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런 순수한 대만 녀석들에게 일본 제품이 먹힐까? 웃기고 있네!
- 제5장. 그녀 나름의 메시지 -

내 안에서 의구심과 확신이 시소를 탔다. 매일 저쪽으로 기울어졌다가 이쪽으로 흔들렸다.
- 제6장. 아름다운 노래 -

마오마오가 달려와 내게 입술을 댔다. 그녀의 눈물이 입술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그건 내가 죽을 때까지 한 키스 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짠 키스였다. 부모님이 나를 때린 것도, 마오마오가 뜨겁게 키스하는 것도, 내게는 마찬가지였다. 단단한 주먹 같았던 그 딱딱하고 아픈 키스는 그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때뿐일 것이다.
- 제8장. 열아홉 살의 액운 -

'똥개는 똥을 먹을 수밖에 없다'라고들 하는데 샤오잔이라는 개자식을 생각할 때마다 그야말로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 제10장. 군혼부대에서의 2년간 -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할아버지를 거의 잊었다. 죽은 자에 대한 추억에는 먼지가 꽤 쌓이고 오래된 거미줄이 내려앉아 마치 빈집 창문으로 들어오는 석양처럼 내 안에서 희미해졌다.
- 제11장. 격렬한 실의 -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너무 많았어요.
레이웨이와의 피 말리는 한 판 승부, 바퀴벌레의 대출몰과 할머니의 격퇴, 첫사랑 마오마오에게 남자 속옷을 선물한 이야기, 군관 학교에서 드럼통에 넣어져 산 정상에서 굴러 떨어진 이야기 등 심각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어쩜 이리 재미있게 풀어내는지요!! 이야기가 저마다 너무 강렬해서 자연히 인물들의 존재감도 눈에 띕니다. 치우성뿐 아니라 각각의 캐릭터들이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그려져 그 어떤 소설에서보다 인물들의 압도적 존재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1970~80년대의 대만의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요. 당시 길거리의 모습과 사람들의 사고방식, 사상, 관습, 도덕관념 등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마치 실제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 글을 쓴 듯 표현이 아주 구체적이고 생동감 넘쳤습니다. 작가가 아무리 유년시절 대만에서 생활했다곤 하나 역사 및 시대 배경에 대한 상당한 공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시대 소설의 매력과 몰랐던 대만의 역사

할아버지 예준린과 치우성을 비롯한 그의 주변 사람들은 역사에 떠밀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며 그야말로 치열한 역사의 산 증인임을 보여줍니다. 대만의 역사 자체가 예준린과 그 가족의 역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그러한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의 삶과 고뇌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시대 소설의 매력이겠지요.

당시의 대만의 역사를 모른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소설을 읽기 전에 간단한 배경 지식 정도는 알고 읽으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청일전쟁의 패전에 따른 할양으로 1895년~1949년까지 50여 년간 일본의 통치를 받았다는 것, 중국에서의 항일전쟁과 그 이후 국민당과 공산당의 국공내전,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이 패배하여 대만으로 흘러들어온 것,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과 대만 토착인 본성인의 대립구도 등..
특히 일본 통치를 그리워하는 대만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는데요. 예전에 대만에 여행 갔을 때 상당히 일본 친화적인 느낌을 받았던 터라 그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었어요. 대만은 왜 어떻게, 같은 일본의 통치를 받았음에도 반일과 항일의 감정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와 다른 노선을 가게 되었는지, 그 이면에 어떤 배경과 역사적 사실이 있는지 추가적으로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또한 우리의 6.25 전쟁처럼 국공내전 또한 그 비참함과 잔혹함이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소설에 과장이 없다면요.

작중 대만의 역사와 관련한 부분을 옮겨봤어요. 궁금하시면 접은 글을 펼쳐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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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대만은,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이 토착 본성인을 깔보는 일은, 그러니까 새가 하늘을 날고 개가 똥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할머니가 대만인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때는 마치 도둑놈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울림이 있었다.
- 제2장. 고등학교를 자퇴하다 -

 

1895년부터 1949년까지의 50여 년간, 대만은 일본 통치를 받았다. 청일전쟁 패전에 따른 할양이었다. 이 기간에는 동화정책으로 학교 교육은 모두 일본어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일본인으로 태어나 일본을 고향처럼 사랑하는 일본어 세대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들의 일본 사랑은 예사롭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스스로 자원해 대일본제국을 위해 싸운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 탓에 3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교과서에 적혀 있다. 그 사람들은 일본인으로서, 나라를 위해, 쇼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그런데 패전과 함께 일본은 대만을 깨끗이 버렸다. 아무래도 너희들은 대만인이야. 대만인은 대만인이지 일본인은 아니야. 그러니 부디 행복해. 그때까지 일본인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자아는 그 시점에서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대륙에서 공산당에 쫓긴 국민당이 이 섬으로 들어온 사태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바로 대만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일본어뿐만 아니라 대만어 사용까지 금지되었다. 대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대만어를 전혀 모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제6장. 아름다운 노래 -

 

당신들은 외성인이죠? 그리고 아마 자네 할아버지는 대륙에서 항일 전쟁에 가담했을 테고. 그의 눈에 일본 통치 시절을 그리워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노예근성이 뼛속까지 박힌 배신자로 보였겠죠. 그건 오스트리아나 체코 사람들이 독일 노래를 부르며 나치 시절을 그리워하는 거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으니까요.
일본 통치 시절 전체가 좋았다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룹은 많든 적든 다 일본인에게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어요.
- 제6장. 아름다운 노래 -

 

전쟁이 남긴 것들
칼로 이마에 사인을 새기고 영혼에 침이 뱉어진 듯한 기분을, 위우원 삼촌도 오래전 맛본 것이다. 할아버지가 슈알후의 가족을 전란에서 구하려 동분서주했을 때 위우원 삼촌은 거름통에 몸을 숨기고 자신의 무기력함을 저주하면서 죽어가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비명을 들었으니까.
- 제8장. 열아홉 살의 액운 -

나는 배웠다. 인간, 드럼통 안에 넣어져 산 정상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 정도로 이렇게 완벽하게 변절할 수 있다면, 진짜 전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 제9장. 춤을 제대로 추지 못해 -

중국에 돌아와 이 땅을 밟았을 때 어릴 때 했던 맹세를 밟고 있는 느낌이었다. 과거의 맹세는, 예준린의 핏줄을 끊어버리겠다는 맹세는, 마치 뼈처럼 이 땅에 묻혀 있었어.. 아니, 이 땅의 뼈 자체였어.
- 제14장. 대륙의 땅에서 -

우리는 전쟁의 역사를 교과서로만 공부했지 실제로 경험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뼈아프고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국가가 아닌 개인 차원에서의 전쟁이 남긴 상흔과 영향 등에 대해선 솔직히 체감하지 못하고 있죠.
무엇이 할아버지 예준린과 그의 동지들을 잔인한 학살자로 만들었으며, 사람을 죽인 것을 무용담처럼 말할 수 있으며, 또 '전쟁이란 그래, 어쩔 수 없는 거였어'라고 말하게 할 수 있는 걸까요..
국민당과 공산당으로 나뉘지만 그들은 뚜렷한 사상적 차이를 가지고 대립했다기보다는 저마다의 먹고살기 위한 사정으로 편을 나눠 원수가 되지만, 사실 왜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지 그들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저 그런 시대였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역사가 이들을 광기에 휩쓸리게 만들었지만, 소중한 가족을 잃으며 생겨난 개개인의 슬픔과 원한은 몇 세대가 지나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죠. 그저 그런 시대였다고 무덤덤하게 말하기엔 그 상처와 트라우마는 너무 큽니다.


치우성의 성장 드라마 속 인생의 교훈



물고기가 말했다. 나는 물속에 살아서 당신은 내 눈물을 볼 수 없어요.
- 왕쉬안 <물고기가 묻다> -

 

치우성 : 그런 나쁜 현실은 진짜 있어. 게다가 우리 바로 곁에. 어쩌면 이 현실이란 것은 정말 지독하고 우리가 아직 멀쩡한 건 운이라는 느낌이 들어. 대학에 가더라도 문학 같은 걸 공부해 봤자 밥 먹고 못 산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아.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미래를 설계해도 어차피 다 망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마오마오 :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바보처럼 느껴진다는 거지? 그건 다들 그래. 나도 그런 걸. 일 같은 건 늘 그만두고 싶어.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생각해. 외톨이로는 견딜 수 없는 게 너무 많아.
- 제7장. 입시 실패와 첫사랑에 대해 -

"물고기가 말했다. 나는 물속에 살아서 당신은 내 눈물을 볼 수 없어요."
레이웨이 : 우리는 자기 고통에만 민감해서 다른 사람도 같은 고통을 안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어. 네가 허벅지를 찔렀을 때 나는 마치 내가 찔린 듯 꼼짝도 할 수 없었어. 뭔가가 나를 쳤어. 그게 뭔지 늘 마음에 걸렸지. 그리고 이 시를 만났어. 아마도 우리는 다...
치우성 : 물속의 물고기였다, 그래?
- 제10장. 군혼부대에서의 2년간 -

사람이 동시에 두 가지 인생을 살 수 없다면 어떻게 살든 후회는 따르기 마련이다. 어차피 후회할 바에는 나로서는 얼른 후회하는 게 낫다. 그러면 그만큼 빨리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다시 시작만 하면 또 다른 데서 후회할 여유도 생길 터이다. 끝까지 파고든다면 그게 바로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
- 제13장. 바람에 실려 들어올 수 있어도 소가 끌어도 나갈 수 없는 장소 -

나름 공부도 잘해서 명문고에 진학했던 치우성이지만 할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인생의 급물살을 맞게 됩니다. 대리시험으로 퇴학당해 지역의 최고 불량 학교로 전학 간 후 그곳에서 파란만장한 고교 생활을 보냅니다.
그러다 조폭 가오잉썅으로부터 친구 샤오잔을 구출하는 일에 삼촌 위우원이 개입하게 되어 삼촌은 감옥에 가게 되고, 치우성은 할아버지가 오랜 세월 숨겨둔 사진 한 장을 발견하여 할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들에 다가가게 됩니다.
맞닥뜨린 할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은 너무 잔인했지만 치우성은 아픔을 딛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테죠.
'끝까지 파고든다면 그게 바로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럼요~~


제목이 '류(流)'인 까닭?
어쩌면 할아버지의 죽음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심각한 게 아닐지 모른다. 매일 어디선가 누군가는 불행한 죽음을 맞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변함없이 복권 당첨을 생각하고 영화를 보고 레코드를 듣고 실종된 개 때문에 애면글면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 제3장. 도깨비불에 대해 -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지, 모르는 일은 모르는 법이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지. 그래도 꾹 참으면 그 사건은 언젠가 우리 안에서 통증을 날리고 복구할 수 없는 상태로 묻히게 된다. 그리고 우리를 지키는 비취 같은 보석이 된다. 그렇지, 할아버지?
- 제4장. 불새를 타고 유령과 만나다 -

하지만 망가지면 안 된다. 인간 세상은 원래 고통스러운 법이지. 빨리 깨달으면 상심도 덜하지. 나도 아이를 잃었으니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 해. 이번 생의 고통에서 도망치기만 하면 저세상에서 선한 유령이 될 수 없으니까.
- 제5장. 그녀 나름의 메시지 -

역사는 흐르고 시간은 흘러갑니다. 그 역사가 얼마나 불행하고 그 시간이 얼마나 고될지언정 그 흐름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의 '숙명'과 같은 삶을 흐를 '류(流)'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평범하지만 위대한 개인들의 삶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출처: www.amazon.co.jp (개인적으로 일본판표지가 더 느낌있는 것 같네요)



4. 그 외 인상적인 문장들
(결말 스포 포함)

좋은 일이 생기면 조심해야 해. 내 능력으로 행운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거지. 그 행운이 과연 누구 덕분인지 늘 명심해야 한다고.

- 제4장. 불새를 타고 유령과 만나다 -
샤오잔은 질 나쁜 양아치일지 모르나 내 친구다. 그 친구가 인생 최대의 위기에 빠졌는데 여기서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면 평생 나는 소심함이야말로 성장의 증거라고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야 하리라. 그렇게 살 바에는 솔직히 죽는 게 더 낫다. 사람에게는 성장해야 하는 부분과 성장할 수 없는 부분과 성장해선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혼합된 비율이 인격이고, 우리 가족에 관해 말하자면 마지막 부분을 존중하는 피가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람이란 결국, 그렇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누군가를 도와주며 사는 거란다.

우리 마음은 늘 과거 어딘가에 붙잡혀 있지. 억지로 그걸 떼어내려 해 봤자 좋을 게 없단다.

- 제8장. 열아홉 살의 액운 -
내뱉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이 늘 몸 안에 머물러 있게 되었고, 그걸 먹잇감으로 해 더 큰 감정과 생각을 물고기처럼 낚을 수 있었다.

옳다는 건 아는데 좀처럼 되지 않는 게 있지? 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거라도 좋아. 그런 것부터 시작해 조금씩 나를 바꿔야 해. - 레이웨이 -

- 제10장. 군혼부대에서의 2년간 -
뭘 후회할 게 있니? 후회하든 아니든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 얼른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고. 이 바보야.

우리는 모두, 늘 우리가 누군지 모르지.

- 제11장. 격렬한 실의 -
프로이트가 주장한 '퇴행'은 견딜 수 없는 일에 직면했을 때, 인간의 마음이 더 유치한 발달단계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렇다, 견딜 수 없는 일 따위 하나도 없던 시절로, 그럼으로써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다.

시야메이링은 울고 있었다. 눈물을 보이지 않고 얼굴을 찌푸리지도 않은 채. 오히려 미소 지으면서.
아아, 그런 건가. 우리는 물고기다. 그래서 아무리 울어도 눈물 같은 건 볼 수 없다. 그녀의 눈물은 떨어지자마자 물에 씻겨 사라진다. 그 모습을 나는 내내 보고도 못 본 척해왔다.

진심으로 원하는 게 손에 들어오지 않을 때 우리는 그와 비슷한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정반대의 것으로. 그리고 영원히 비슷한 것을 비슷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볼 때마다 타협했다는 현실이 코앞에 놓인다. 하지만 대부분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비슷한 그것조차 이 손으로 잡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 제13장. 바람에 실려 들어올 수 있어도 소가 끌어도 나갈 수 없는 장소 -
어쩌면 할아버지는 ** 손에 죽길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과거를 청산해 주길 바랐을지도.

네 할아버지는 네 가족의 목숨을 전부 내 앞에 늘어놓았다. 시장의 채소처럼. 자, 네 마음대로 해보라는 듯. 말로는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속으로는 자기가 한 짓을 후회한다는 걸 알았다. 내가 덮쳤을 때 그 남자는 거의 저항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죽이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예준린을 죽인 것조차 후회했다. 그 남자는 죽을 때까지 죄의식에 시달리는 게 나았어.

- 제14장. 대륙의 땅에서 -
가슴의 응어리를 토해내면 좋기는 하겠지. 하지만 토해낸 말에 끌려가 당신이 우리 손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릴지도 모르니까.

인생은 이어진다. 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나는 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말할 수 없다. 그런 짓을 하면 이 행복한 순간을 더럽히게 된다.

- 에필로그 -

 

출간과 동시에 ‘제153회 나오키상’과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일본 서점대상’ 등 일본 최고의 문학상을 휩쓸며 벼락같이 등장한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류》가 한국 독자들의 오랜 염원 끝에 국내에서 출간됐다. 아직 국내에 출간이 결정되기 전부터 일본소설 마니아들 사이에서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던 이 소설은, 일본 최고의 문학상 중 하나인 ‘나오키상’ 수상작들 중 2000년대 들어 처음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대상’에 선정된 것은 물론, “몇십 년 만에 한 번 나올 만한 위대한 걸작”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작가인 히가시야마 아키라 역시 오랜 침체기를 겪고 있던 일본 문단을 구원할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소설 속 캐릭터들이 마치 살아 있는 듯 거리를 활보하는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필력”, “독자를 혼돈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와 같은 심사평에서 알 수 있듯, 《류》에 등장하는 작중 인물들은 꽤나 흥미롭고, 개성이 넘치며, 끊임없이 우리를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 작가가 창조해낸 가공할 만한 혼돈의 역사 속으로 훌쩍 뛰어들어 보자. 소설 《류》는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할아버지 예준린의 죽음을 목격한 예치우성이 살인범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이자, 역사, 시대물이다. 완벽하게 자취를 감춘 범인을 쫓는 과정과 전혀 의외의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치밀한 반전의 설계는 훌륭한 장르물의 면모를 보이나, 소설이 삼고 있는 시대적·역사적 배경과 삼대에 걸친 세대의 중첩은 장르물의 범주를 한참이나 벗어나 대하소설의 영역까지 가 닿는 스케일을 구축했다. 저자는 혼돈과 활력이 공존하는 대만 사회를 배경으로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이라는 피 튀기는 현장, 조직폭력단의 항쟁, 군사훈련이 강제되는 독제사회, 애절한 첫사랑과 실연, 일본과 중국을 나아가 온 세상을 누비는 인물들의 모험을 다각적, 중층적으로 그려냈다. 여기에 유령, 분신사바, 도깨비불이라는 초현실적인 요소마저 위화감 없이 엮어 작가가 창조해낸 《류》의 세계관이 미스터리를 넘어 어디까지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기분마저 들게 된다.
저자
히가시야마 아키라
출판
해피북스투유
출판일
202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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