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마루 가쿠'의 <악당>을 읽었어요.😄
사실 몇 달 전에 읽은 책인데 좋아하는 작가라 부지런하게 다시 기록해보자 생각하여 포스팅을 해보려구요.
야쿠마루 가쿠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알려진 작품은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일 텐데요. 그 외에도 괜찮은 작품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침묵을 삼킨 소년>, <악당>, <우죄>가 전 더 좋았어요.
<나의 평점 : 4.0/5.0>
가독성 : ★★★★
재미 : ★★★★
여운 : ★★★★
1. 줄거리/개요
(출판사 서평 참조)
범죄 가해자 추적 조사를 하는 탐정사무소
중학생 때 누나가 강간 살해당한 사건으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주인공 사에키 슈이치. 일련의 사건으로 경찰직을 그만두고 현재는 탐정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느 날 한 노부부가 찾아오게 되고, 부부는 11년 전 아들을 살해하고 소년원에 들어간 사카가미라는 남자가 사회에 복귀한 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사해 달라고 한다. 더불어 그를 용서해야 할 근거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의뢰하는데.. 사에키는 탐탁지 않아 하지만 소장인 고구레의 강요에 사카가미의 행적을 뒤쫓게 되고 자신이 내린 결론을 부부에게 전달한다.
범죄 피해자의 유족이기도 한 사에키는 제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사무소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을 만나며 오랫동안 맺혀 있던 응어리를 풀기 위해 굳은 결심을 하게 되는데.... 누나를 죽인 범인들이 사회에 복귀한 모습을 보고 복수의 결의를 다진 사에키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 리뷰
(스포 있음 부분은 건너뛰세요)
제가 야쿠마루 가쿠를 좋아하는 이유는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도 있지만 읽고 나서 항상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소년범죄에는 집착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소설에서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요 이번 <악당>에서도 그렇습니다.
소년들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가해자와 피해자 유족들이 각각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범죄 가해자 추적 조사라는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소년범죄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고 그에 대해 작가는 매번 정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독자들에게 의문을 던지고 '만약 나라면?'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단순히 킬링타임용 추리소설로서가 아니라 사회 문제를 심도 있게 생각해볼 수 있어 깊은 여운이 남아요.
소설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있고, 5개의 다른 사연들과 주인공 사에키의 사연이 맞물려 하나의 큰 형태를 이룹니다. 리뷰에서는 인상적이었던 사연만 다뤄보도록 할게요~~
사카가미가 용서해도 될 만한 인간인지 아닌지 알고 싶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를 용서해야 한다면 그럴 만한 근거를 찾아주세요.
가해자가 속죄했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으며.. 가해자는 얼마나,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할까요..
살아있는 동안은 평생 죄책감을 안고 끊임없이 용서를 빌어야 하겠죠!! 평생 비난받는 것도 당연합니다. 나름의 괴로움이 있을지언정 그들이 숨도 쉬고 밥도 먹는 동안 죽어버린 피해자는 그것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스포 있음) 결국 사에키는 사카가미가 회개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노부부에게 알린 후 노부부는 사카가미를 해치고 맙니다. 용서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버텼지만 용서할 수 없었던 거지요. 만약 내가 범죄피해자의 유족이라면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용서해야만 하는 걸까. 너무 어려운 문제입니다.
2장은 가장 끔찍한 에피소드였어요.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너무 똑같아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 경북 구미에서도 젊은 엄마가 3살 딸을 집에 가둔 채 집을 나가 아이가 굶어 죽어 발견된 사건이 있었죠. 사건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너무 닮아서 먼저 출판된 책이 미래를 예언이라도 한 것 같지만... 그만큼 현실 세계에서도 이런 잔혹한 일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겠죠?ㅠㅠ 애써 잊었던 구미 사건이 떠올라 2장에서는 특히나 더 마음이 아팠어요.
(스포 있음) 어릴 적 그 사건으로 동생을 잃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쓰요시는 성장 후에 생모를 찾아갑니다.. 그 비정한 악마가 새로운 아이를 임신 중이었을 때는 정말이지 너무 경악스러웠어요🤯 그러고도 또 부모가 되려고 하다니...
3장에서, 남동생이 일으킨 살인사건으로 평생 도망치는 삶을 살아온 야요이는 출소한 남동생을 거부합니다.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어요. 그럼에도 결국에는 동생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또다시 나쁜 짓을 저지르면 내가 너를 죽여버리겠다는 그 말에 울컥했네요. 혈육이란 이토록 질기고 강한 인연이구나 새삼 느꼈습니다.😌
가끔은 웃을 수 있는 일을 하거라. 언제든 웃어도 된단다. 아니, 웃어야만 한다. 우리는 절대로 불행해져서는 안 돼.
- 220p, 사에키의 아버지 -
(스포 있음) 사에키는 누나를 죽인 주범인 에노키의 임종 전 마지막 순간에 결국 복수를 그만둡니다. 그렇게 고통을 겪고도 왜 복수를 포기하냐고 따져 묻고도 싶었지만 한편으론 사에키가 너무 애처롭고 또 다행스러웠어요. 그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또 다른 고통을 만들지 않아서요.. 잃어버리고 후회할 것이 남아 있다면, 사에키 아버지의 말처럼 그냥 웃으면서 살아가야만 하겠죠.
복수는 옳은 일일까요... 정답이 없습니다.
야쿠마루 가쿠의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흠뻑 빠져 금세 다 읽고 맙니다. 사건 전개가 루즈할 틈 없이 속도감이 있으며 심리 묘사도 탁월해서 이야기에 깊이 몰입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인만큼 밝고 유쾌한 느낌은 절대 아닙니다. 읽으면서 괴로운 감정도 들겠지만 마지막 결말에선 희망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어요.
피해자 유족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에 대해 간접적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고, 정답은 내릴 수 없지만 진정한 속죄와 용서란 어떤 형태여야 할까에 대해 내 나름으로 생각해 볼 수 있어 의미 있는 독서 시간이었어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꼭 추천드리고 싶어요!!🤗
** <악당>은 2019년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습니다.
2020년 불륜사건으로 일본을 떠들썩하게 한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사에키 역할을 맡았네요🤨
3. 인상적인 문장들
사건을 벌인 장본인은 담장 안에 들어가 보호를 받아요. 튼튼한 벽이 피해자 유족의 증오와 세상의 규탄을 막아 줘요 하지만 우리는 그 증오와 규탄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해요. 그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무일푼이 됐고, 남들의 이목을 피하듯 도망쳐 다녔어요. 전 대학을 그만뒀고, 동생이 살인자라는 이유 때문에 연애하는 것조차 두려워요. 모든 가능성이 닫혀 버렸단 말이에요. 그런 동생을 위해서 제가 더 무얼 희생하라는 건가요?
- 105p, 야요이 -
넌 앞으로 여기서 나랑 함께 살아. 아무리 괴로워도, 절대로 도망칠 수 없어. 사람한테 해를 입혀 형무소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절대로 들지 않게끔 할거야. 만약에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내가 가족으로서, 단 하나 남은 피붙이로서 책임지고...널 죽여 버릴 테니까. 넌 혼자가 아냐.
- 111p, 야요이 -
넌 네 누나를 범하고 죽인 놈들의 어떤 모습을 봐야 용서할 마음이 들까? 그놈들이 형무소에서 나와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과거의 죄를 용서할 수 있을까? 누님의 무덤이나 네 앞에서 울며불며 용서를 구한다면 넌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악당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아. 그래서 용서라는 성가시기 짝이 없는 걸 구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아. 악당은 자신이 빼앗은 만큼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도 잘 알아. 그래도 기어코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마는 인간, 그게 바로 악당이라는 거다.
- 242p, 사카가미 -
"이게 너의 인생인가?"
"그래. 나란 놈은 죽음이 닥쳤을 때도 빼앗아 온 것들과 잃어버린 것들을 저울에 재보겠지."
- 243p, 사에키와 사카가미의 대화 -
(에노키의 엄마) '가즈야는 진즉 죽었어요. 그런 괴물은 제가 죽여 버렸단 말이에요!'
죽기 직전에 이 말을 들려준다면 에노키는 어떤 절망을 맛보게 될까? 네놈은 가장 소중한 사람의 손에 살해당해 죽는 거다. 놈의 영혼을 죽인다.. 이걸로 유카리 누나의 복수를 완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형언할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이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었다. 이 감각은 대체 뭐지? 망설임..? 에노키의 어머니를 향한 증오인가? 낳을 때는 언제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르면 쉽사리 제 자식의 존재를 죽여 버린다. 그런 어머니를 향한 격렬한 분노가 솟았다.
- 278~279p, 사에키 -
넌 왜 태어났나? 살면서 어떤 짓을 해왔는가? 네놈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가치가 있었는가? 사랑했던 어머니의 말을 듣고 고통에 겨워하며 죽어 가라. 네놈에게 그 고통을 안겨 주려는 나는 악당이다. 너와 똑같은 악당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유카리 누나의 복수를 완수하기 위해 악당이 될 것이다.
뭘 망설이는 거냐. 유카리 누나를 위한 복수 말고 나에게 소중한 것이 또 있으랴. 잃어버리고 후회할 것이 지금 나에게는...
- 282p, 사에키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리뷰 / 일본소설 서평]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 야마시로 아사코 (7) | 2022.10.21 |
---|---|
[책 리뷰 / 일본소설 서평] 요리코를 위해 - 노리즈키 린타로 (2) | 2022.10.19 |
[책 리뷰 / 일본소설 서평] 양과 강철의 숲 - 미야시타 나츠 (1) | 2022.10.12 |
[일본 추리소설] 백광 - 렌조 미키히코 (2) | 2022.10.11 |
[히가시노 게이고 특집 4탄★] 2022년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추천 순위, 인기 랭킹 30선 소개 (1~10위) (7) | 2022.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