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로 '미치오 슈스케'의 <용서받지 못한 밤>을 읽었어요. 요즘 밀리의 서재로만 독서 중입니다. 너무 좋네요😄
읽고 싶은 책 서재에 담아놓고 카테고리별로 분류해서 관리할 수 있고 메모, 하이라이트, 북마크 기능도 있어 좋아요~~ 원하는 책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 외에도 읽을 책은 너무 많으니까요~~^^
<용서받지 못한 밤>의 원제는 '雷神(뇌신)', '벼락의 신'으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우리나라 번역본에서는 전혀 다른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아래 리뷰에서 제 생각을 적었어요.
책 표지에 있는 '내 딸이 아내를 죽였다'라는 문구가 너무 강렬해서 호기심을 자극했는데요. 정말 말 그대로 강렬한 책이었습니다!! 그럼 리뷰해 볼게요~~
<나의 평점 : 3.8 / 5.0>
가독성 : ★★★★
재미 : ★★★☆
여운 : ★★★★
1. 줄거리/개요
사이타마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후지와라 유키히토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과거 아내 에쓰코의 죽음에 딸 유미가 관계되어 있다는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
31년 전, 후지와라가를 덮친 어머니의 의문사. 그로부터 1년 뒤 어머니의 죽음과 관계가 있어 보이는 마을 권력자 네 명이 독버섯을 먹게 되어 숨을 거두거나 중태에 빠진다. 모든 정황이 아버지 미나토의 복수를 암시했지만 아버지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대고 용의선상을 빠져나간다.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유키히토는 누나인 아사미와 딸 유미와 함께 30년 전 도망치듯 떠나 온 고향 하타가미 마을에 정체를 숨기고 취재하러 간다. 모든 것은 딸 유미를 지키기 위해서... 왜 어머니는 죽은 것일까. 아버지는 정말 죄를 저지른 것일까..
마을의 전통 축제인 신울림제가 있던 날, 사건의 발단이 된 벼락. 그 후 운명을 바꾼 한 통의 편지와 아버지가 평생 숨겨온 한 장의 사진. 그리고, 현재로 이어진 새로운 비극. 결코 교차할 리 없었던 운명이 교차할 때, 세찬 파도의 클라이맥스가 다가온다.
딸의 인생을 지키려고 했다. 진실을 끝까지 숨기는 건 얼마나 큰 죄일까.
난 틀리지 않았어.
2. 리뷰(결말 스포 포함)
제목(원제 '벼락의 신')처럼 정말 벼락에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가는 재미가 있었고, 작가가 곳곳에 심어 놓은 복선들이 이야기 후반에서 회수되는 포인트들이 기가 막혔습니다. 오랜만에 퀄리티 높은 추리소설을 읽었네요😙
독살사건의 범인 찾기가 흥미진진했습니다. 아버지 미나토를 포함해 모두에게 의심 가는 부분이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추리해 보았지만 저는 실패했어요.. 범인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과정에서 은폐되어 있던 사건의 트릭들이 기발했고, 무엇보다 30년에 걸친 긴 세월 속에 묵직한 울림이 녹아있는 드라마였습니다.
(스포 있음) 책을 읽고 세 가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첫 번째는, '신의 존재' 입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선의로 한 사소한 행동이, 우연히도 끔찍한 비극으로 이어져 일상을 파괴하고 소중한 것을 앗아가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유미는 아빠의 엉겅퀴 화분을 더 잘 자라게 하기 위해 베란다 난간에 두는 바람에 의도치 않았지만 엄마의 죽음을 초래하고 맙니다. 그리고 한참 과거를 거슬러 가 유키히토는 어릴 적 마을 숲 속에서 청환각버섯을 발견하여 그것을 시노바야시 유이치로(협박범)에게 빼앗깁니다. 자신이 발견한 그 버섯이 나중에 어떻게 쓰여 어떤 일을 초래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겠지만요. 운명의 장난이 너무 얄궂습니다.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이런 비극들을 볼 때마다 정말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ㅠㅠ
감정에 떠밀리고 현실에 농락당하고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피가 날 만큼 입술을 꽉 깨물지만, 그래도 행복만 꿈꾸며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를 어디선가 보고 있는 존재가 있을까. 아버지가 한 일, 누나가 한 일, 나와 기에가 한 일, 하지 않은 일. 15년 전 그날, 어린 유미가 아빠에게 베푼 다정한 마음씨, 꺼져버린 목숨,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후회. 그걸 전부 보고 있는 존재가 어딘가에 있을까. 이 세상엔 어떤 신도 없다.
- 에필로그-뇌신 -
두 번째는, '가족'에 대해서에요.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랑과, 특히 부성애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미나토가 딸 아사미를 위해 끝까지 지킨 비밀, 유키히토가 딸 유미를 위해 끝까지 지켜나가려는 비밀.. 후지와라 사람들은 누구 하나 이기적인 사람 없이 가족을 생각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했음에도 오랜 세월 서로에 대해 오해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이런 비극적인 결말을 맞아야 했다니..
마지막에 아사미가 나오토(독살사건의 마지막 생존자)를 습격했다가 실패하고 달아날 때, 유키히토가 절규하며 울부짖던 장면이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누나가 제발 붙잡히지 않고 끝까지 도망치기를 바라며.. '멈추지마, 달려!!' ㅠㅠ
미나토 씨는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꿨죠. 분명 나와 누나를 생각해서, 엄마의 죽음을 극복하고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생각해서다. 복수와 가족을 양팔에 올린 천칭이 마지막 순간에 가족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아버지는 그때 희망에 가까운 뭔가를 보고 있었던 것 아닐까. 모든 것을 잊고 재출발하려는 마음 아니었을까.
- 에필로그-뇌신 -
세 번째는 '진실'에 대해서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진실'을 추구하고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겠지요. 하지만 알아서 괴로울 진실이라면 꼭 알아야만 할까요?.. 끝까지 모르는 편이 좋은 진실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타가미 마을에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살아도 괜찮았을 진실을 굳이 굳이 파헤친 결과, 그 진실의 무게에 짓눌려 더 큰 비극을 초래하고 맙니다.
아내의 죽음에 대해서 유키히토는 앞으로도 딸 유미에게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미나토가 죽을 때까지 딸 아사미의 범행을 숨긴 것처럼.. 그것이 결국 현명한 선택이었고 가족 모두를 위한 길이었어요. 딸의 비밀을 지키기 위한 미나토의 30년 세월이 결국엔 헛수고로 돌아간 이 비극적 결말이 너무 슬프고 안타까워요😢
(스포 있음) 독버섯, 벼락 등 평소에 잘 접할 일 없는 것들이 주요 소재로 등장해 생소했지만 참신하고 흥미로웠어요. 일본판 원제가 '벼락의 신'인데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얼까 생각해보니.. 평화를 깨부수고 일상에 불어닥친 불행을 벼락에 비유하여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요? 너무 어렵네요..
한국판 제목은 그에 비하면 더 단순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용서받지 못했다는 것은 마을 권력자 네 명이 일으킨 31년 전 그날 밤의 사건이 용서받지 못했다는 것일 수도 있고, 아사미가 벼락터에서 두 번째 벼락을 맞아 기억을 되찾은 밤에 '과거에 저지른 죄를 용서받지 못한 것이구나' 하고 벼락을 통해 아사미를 일깨우기 위한 것일 수도 있구요.
(스포 있음) 스토리 전개에 있어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라베 기에와 유키히토의 이야기 후반에서의 행동입니다. 독살사건의 범인이 아사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아사미가 기억을 되찾아 폭주하려는 걸 눈치챘음에도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 결국 최후의 비극(아사미가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고, 아사미 본인도 죽게 되고..)으로 이어집니다. 전부 신에게 맡기자는 생각이었다는 그들의 말이 다소 무책임하게 들렸어요. 그들의 방향을 잃은 심리 상태와 아사미의 폭주를 넋 놓고 두고만 보는 행동이 너무 답답하고 명쾌하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아버지는 30년 전 분명 자기 힘으로 누나를 지켰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온갖 상황이 누나를 가리키고 있었건만,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동굴 속 죄수처럼, 다시 원래 있던 어두운 곳으로 되돌아가 숨죽인 채 익숙한 그림자로 만들어진 거짓 세상을 바라보며, 그것이야말로 진짜라고 나 자신을 달랬다.
- 에필로그-뇌신 -
결말이 너무 슬프고 허무해서, 가슴속에 돌덩이가 앉은 것 같지만..그래도 결론적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요.
다 읽고 나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 여운이 깊게 남았습니다.
미치오 슈스케라는 작가가 확실하게 뇌리에 박혔네요. 다른 작품도 꼭 읽어보고 싶어요~!!😊
3. 인상적인 문장들
엉겅퀴 화분. 그걸 딸이 베란다 난간 옆 콘크리트 부분에 놓아둔 것. 꽃이 자라지 않는다고 내가 걱정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엉겅퀴에 햇볕을 쬐어주려고 한 것이다. 딸을 베란다에서 놀게 한 건 나다. 엉겅퀴를 키운 것도 나다. 후회라는 말로는 모자란, 안쪽에서부터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감각이 지금도 매일같이 덮쳐온다. 그 느낌이 사라지는 날은 분명 영원히 찾아오지 않으리라.
- 제1장. 평온의 종말과 협박 -
누나는 그렇게 서글픈 일들을 늘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누나가 강한 척한다고 생각했고, 사실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강해질 수 있는 건 강한 척할 수 있는 사람뿐이리라.
- 제3장. 진상의 해명과 낙뢰 -
나이를 먹을수록 행복했던 시간에 견주어 비교할 시간만 늘어나고, 이미 현재와 단절돼버린 그 행복했던 시간들은 멀어질 뿐이다. 그만큼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절절하게 느낀다.
- 제3장. 진상의 해명과 낙뢰 -
누나의 가슴에 아주 조금이나마 평온함이 있었기를. 30년의 세월을 넘어 되살아난 분노와 원한이 마지막 순간에 구름처럼 사라지고 밝은 빛이 비쳤기를.
- 에필로그-뇌신 -
살의는 분명, 언제나 수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을 겁니다. 그 대부분이 살인으로 이어지지 않는 건 그저 운이 좋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벼락처럼, 끌어들이는 요소와 응하는 요소가 우연히 맞닥뜨려서 살인이 일어나는 거겠죠. 약간의 불운이 살의를 살인으로 바꾸는 거예요.
- 에필로그-뇌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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